김준수 작가가 말하는 살아있는 재료, ‘가죽’
가죽과 금속을 주요 매개체로 모던 아트 크래프트맨쉽을 전개하고 있는 아티스트 김준수 작가.
그가 생각하는 모던 크래프트맨쉽에 대한 태도와 가죽이라는 물성에 대해 물었다.
금속공예를 전공하고 현재는 가죽끈을 쌓아 올리는 형태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굉장히 다른 두 개의 재료를 다루게 된 그 여정이 궁금하다.
처음에는 딱딱하고, 딱 떨어지는 금속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재질에 매력을 느껴 가죽공방에서 취미로 다루게 되었다. 금속공예에서도 다양한 분야가 존재하는데, 그중에서도 실험적인 재료들을 많이 활용하는 예술 장신구 분야가 있다. 이 경로를 통해 타 재료에 대한 연구를 할 수 있었고, 가죽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이탈리아에 가죽 워크숍 프로그램을 통해 베지터블 레더를 생산하고, 제품화되고, 남은 자재들을 관리하는 모든 과정에 대해 알 수 있었다. 프로그램의 마지막 과정으로 남은 가죽 자재들로 작품을 만들고 전시까지 하게 되면서 가죽을 원단으로 보는 것이 아닌 살아있는 재료로 보는 계기가 되었다.
가는 가죽끈을 쌓아 올려 만들어내는 결과물을 보면 나무의 나이테 혹은 껍질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자연을 닮은 느낌을 추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떤 고정된 이미지를 표현하고자 하였다기보다는 물성에 대한 연구로 가죽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남들이 잘 모르는 가죽 고유의 특성에 대한 연구로 접근하였다. 가죽이 본래 품고 있는 본질을 따라가면서 얻게 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작업물에 대한 보는 이의 피드백, 그리고 개인적인 취미인 식물 가꾸기와 같은 요소들이 점차 발전되어 작품에 전달되기도 한다. 그런 것들이 작품에 은연중에 녹아든 것 같기도 하다.
가장 최근에 개최한 개인전 <시간, Time fo/r/est>에서 작가는 휴식과 삶을 대하는 여유로운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작가에게 시간이란 어떤 의미인가?
개인전 <시간, Time fo/r/est>에서는 다양한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큰 주제에 대해서는 제주의 사려니숲길에서 영감을 얻었다. 한 그루의 작은 나무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여러 그루로 자라나면서 울창한 숲이 되기까지의 시간, 오랜 시간과 작업공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완성된 모습을 볼 수 있는 나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최근까지 쉼 없이 달려온 나에게도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다. 근본적으로는 시간을 대하는 다양한 방식의 태도들에 관해 이야기 하고자 했다.
작가의 작업방식을 짚어보면, 가죽면을 가늘게 한올 한올 잘라내고, 켜켜이 쌓아 올려, 마지막에는 옻칠을 입히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는 작업 방식인 것 같은데 이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의식적으로 오래 걸리는 방식을 고집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요즘 같은 시대엔 공산품을 기계를 이용하여 빠르게 생산한다. 그만큼 또 빠르게 대체되고 잊혀가는 것 같다. 기계의 기술력보다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간단한 손 도구만을 이용해서 그만큼 노동력이 들어가는 작업방식이 나와는 맞는 것 같다.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들어간 작업이 공산품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동을 선물할 수 있는 것 같다.
작가의 손길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공정은 장인정신과도 맞물려있는 것 같다. 작가가 생각하는 장인정신이란?
내가 생각하는 장인정신이란 전통성과는 또 다른 것 같다. 의례 장인정신이라 함은 전통적인 기법들을 몇 대에 거쳐서 수십 년간 유지해온 것이지만 나는 그런 역사를 가진 사람이 아니다. 다만, 수많은 작업과정들 중에 어느 것 하나 간소화하거나 생략하지 않고 모든 과정을 밟아가면서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한다. 작업에 조금 더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하나 정성 들이는 것 말이다.
살아있는 생명이 삶의 끝자락에 남긴 ‘가죽’이란 흔적은 주재료로 오랜 시간 보존될 수 있는 결과물을 전개하고 있다. 작가가 후에 남기고자 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내가 다루는 재질들이 그냥 원단으로써 접근하여 쓰고 버려지는 물건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동물에서 얻은 재료지만,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 때로는 식물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파티션과 보울 시리즈처럼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 혹은 어떤 공간에 두었을 때 그 공간의 분위기 자체를 바꿔버리는 기능도 갖게끔 작업한다.
베지터블 레더 특성상 한자리에 놓이면 자연스레 태닝이 되기도 하고, 색이 변하기도 하면서 여전히 살아있는 것과 같은 특징을 보인다. 나는 그런 나의 작품들이 놓인 그 순간부터 ‘살아간다’라고 생각한다. 놓여있는 그 공간에서 사용자와 그 주변의 물건들과 공생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가죽의 가치를 오래도록 이어나가는 작업을 하고 싶다.